1950년대 전후 예술가들의 삶에 대한 고뇌를 그리고 있는 김동리의 소설 의 한 구절이다. “밀다원”이라는 다방에서 각자의 삶에 대해, 전쟁으로 피폐해진 현실에 대해 진지하게 고뇌하는 예술가들의 모습. 이 소설이 당대의 현실을 잘 보여주고 있음을 알 수 있는 부분이다. 전쟁으로 인해, 생존조차 위태로웠던 지식인들에게 다방은 위로의 공간이자, 현실도피처이자, 새로운 창작의 공간이였다. 문학가 뿐만 아니라 시인, 영화인들까지 다방으로 모여들어 사회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작품에 대해 이야기 했다. 이러한 다방 문화는 충무로와 명동을 중심으로, 1970-80년대 까지 그 역사를 계속 이어 나갔다. 다방문화는 그 시대의 정서와 당시 젊은이들의 문화적 감수성을 잘 보여준 다는 점에서 문화사적으로 그 의의가 남다르다. 단순히 커피를 마시는 공간개념을 넘어서서 서로 문화적이고 사회적인 담론들에 대해 이야기 할 수 있는 그들만의 아지트였다.
#. 카페의 변천사
이러한 카페문화는 사회 흐름에 맞게 계속해서 변화해왔다. 50년대의 다방문화도 1896년 아관파천 때 고종이 러시아 공사관에서 처음 커피를 맛본 후, 덕수궁에 돌아와 ‘정관헌’이라는 서양식 건물에서 서양음악을 들으며 커피를 마시는 모습에서 출발하여 시대에 맞게 변화한 모습이였다.
1970년 대에는 다방에 처음으로 DJ가 등장하면서 음악다방이 전성기를 이루게 된다. 청바지를 입고 통기타를 맨 사람들이 다방에 모여 그들만의 문화를 꽃피웠다. 장발머리를 하고 느끼한 멘트를 서슴없이 날리던 잘 생긴 DJ들은 지금 아이돌 그룹들이 부럽지 않았으리라. 최근 20대들에게도 기성세대의 문화에 공감하게 했던 ‘세시봉’만 보아도 이 때의 낭만적인 음악문화가 젊은이들에게 어떤 의미였을지 알 수 있다. 1980년 대로 접어 들면서도 청춘들의 다방사랑은 변함이 없었고 이 공간은 혁명을 꿈꾸던 청년들의 민주항쟁을 탄생시키게 해준 공간으로 까지 진화했다. 하지만 80년대 후반으로 들어서면서 커피의 보급률이 점점 많아지면서 다방의 손님은 줄어들게 된다. 굳이 다방에 오지 않아도 자판기나 커피믹스를 통해 쉽게 커피를 즐길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였다.
1990년 대에는 ‘에스프레소 커피’의 수요가 생겨나면서 처음으로 지금 대학생들에게 익숙한 ‘커피전문점’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문화적 기호가 다양해 지면서 단순히 프림 두스푼과 설탕 두스푼만 들어간 밀크커피가 전부였던 다방은 몰락을 선언할 수 밖에 없었다. 커피 메뉴의 다양성에 더불어 상대적으로 비싼 커피들이 등장하기 시작했고 이에 맞는 세련되고 고급스러운 분위기는 커피전문점이 갖춰야할 중요한 요소로 자리매김 하였다.
이러한 카페의 고급화는 2000년대로 까지 이어진다. 사람들은 점점 더 커피보단 커피전문점의 이미지를 중시하게 되었다. 고급스러운 커피 전문점의 많은 등장은 답답한 도서관에서 벗어나고 싶어하던 대학생들의 발걸음을 끌어당기기에 충분히 매력적이였다. 이제 우리는 카페에 앉아 노트북을 켜놓고 과제를 하거나 두꺼운 전공서적을 펴놓고 공부하는 대학생들을 너무나 자주, 쉽게 볼 수 있다. ‘카페에서 공부하는 대학생’의 등장은 카페도 도서관 처럼 조용했으면 좋겠다라는 소비자 욕구를 만들어 냈고, 이 욕구에 맞춰 처음으로 등장한 것이 바로 ‘북카페’이다. 고급스러운 분위기와 더불어 서재에 온듯 벽면을 가득 둘러싸고 있는 책들을 보고있으면 나도 모르게 정숙하게 된다. 하지만 이름과는 달리 북카페 역시 그냥 자기 공부에 몰두해있는 대학생들로 넘쳐났다. 조금은 시끌벅적한 일반카페보다 조용하고 방해하는 이 없으니 공부하기에 적당하기 때문일테다.
그래서 이제는 아예 ‘스터디 카페’라는 명칭을 가진, 이름부터 정말 공부를 해야하는 카페임을 잘 보여주는 새로운 공간들이 많이 탄생하고 있다. 다방으로 부터 변화해온 카페는 이제 서로 담론을 나누고 소통하던 개방적인 공간에서 점점 폐쇄적이고 개인주의 적인 공간으로 변해가고 있다.